- 현재의 전라북도 도청 소재지인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完山 : 比斯我·比自火)으로 서기 554년(백제
위덕왕
1년) 완산州라 하였다가 565년에 州를 폐하였다.
- 백제가 신라에 망한 뒤 685년(신라 신문왕 5년)에 州를 다시 두어 완산주라 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년)에 지금의 全州로 개칭하였다. 그 후 효공왕때 견훤(甄萱)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였다.
- 936년(고려 태조 19년)에 후백제의 신검(神劍, 견훤의 아들)을 쳐서 평정한 후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라
일컬었다가 940년(태조 23년)에는 다시 全州로 환원하였다. 993년(고려 성종 12년)에는 그 고을을 맡은 벼슬 이름을 승화절도안무사(承化節度安撫使)라
일컫고, 995년(성종 14년) 12절도사를 둘 때 순의군(順義軍)이라 칭하고 강남도(江南道)에 예속하였다.
- 1018년(고려 현종9년)에 이르러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라는 이름으로 고을의 지위를 올렸다가
그후에 또 전주목(全州牧)으로 개칭하였다. 1355년(공민왕 4년)에는 원나라의 사신 야사불화(야思不花)를 거두었던 곳이라 하여 그 지위를
낮추어 부곡(部谷)이 되었다가 1년뒤인 1356년(공민왕 5년)에 다시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 우리 태조 고황제 원년(1392년)에 임금님 조상이 나신 고장이라 하여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격을
올렸고 1403년(태종 3년)에 전주로 다시 고쳐 부윤(府尹)을 두었고 세조 때에는 진(鎭)을 두기도 하였다. 그 뒤 줄곧 전라도의 감영이
이곳에 소재하였으며, 1895년(고종 32년) 郡이 되고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그 뒤 1935년 府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 市로 개칭되어 오늘날 인구 50만의 도시가 되었다.
- 完山은 원래 전주부의 남쪽 3리쯤에 있는 작은 산 이름으로 고덕산(高德山)으로부터 갈라진 산이었는데 전주의
안산(案山)으로 남복산(南福山)이라고도 하였다. 또 북쪽 10리쯤에 있으면서 마이산(馬耳山)으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전주의 진산(鎭山)인
건지산(乾止山)과 마주 바라보던 산이었다.
- 따라서 우리 전주이씨는 완산이씨(完山李氏)라고도 불렀으며, 현재도 기호에 따라 간혹 "완산"을 본관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全州를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조선왕조 시대의 옛 문헌들에서도 일관되게 "전주"를 본관으로 사용하여 왔던 사실로 보아
조선 건국과 함께 "전주"본관 사용이 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 아무튼 全州는 조선왕조의 시조가 탄생한 곳이며 시조 사공 공(휘 翰)의 묘역인 "조경단(肇慶壇)이
위치(전주시 덕진동 건지산)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 전주이씨와 절대적인 관계에 있다.
- 시조이래 대대로 전주를 세거지로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께서는 태조 고황제의 고조부인 목조(휘 안사"安社")부터
관향인 전주를 떠나 강원도 삼척(활기동) → 함경도 덕원 → 원나라 와똥(斡東) → 적도(두만강 유역) → 함경도 경원 등으로 이거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지역을 토대로 고려말 명장으로 성장한 태조 고황제(휘 성계"成桂")께서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통하여 국운이 쇠한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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