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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廟)·전(殿)·궁(宮) 약사(略史)

조경묘(肇慶廟)

 

  • 시조 선공(신라 司空公)과 시조비 경주 김씨 신판(神版)을 봉안한 廟이다
     
  • 영조 47년(서기 1771년) 10월 16일에 경희궁(慶熙宮) 자정전(資政殿)에서 양위 신판을 창조봉안(創造奉安)하여 친히 제사 지내시고 경기전(慶基殿) 북쪽 (현재의 전주시 풍남동)에 廟를 세우시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진과 함께 보는 조경단
    조경단 고사보기

경기전(慶基殿)

 

  • 태조 고황제의 수용(수容)을 봉안한 殿이니 태종 10년(서기 1410년) 에 전주(현재 전주시 풍남동)에 창건하시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원전(璿源殿) 1

 

  • 태조 고황제의 수용을 봉안한 殿이다. 태조 5년(1396년)에 영흥(함경북도 영흥군 순녕면 정자리)에 옛적부터 용연(龍淵)이라고 일컫던 못(池)을 메우고 이 殿을 세우셨다.

  • 태조 고황제의 어태(御胎)를 이 용연에 봉장(奉藏)하였다.

선원전(璿源殿) 2

 

  • 이 殿은 창덕궁내에 있는데, 황송하옵게도 열성조(列聖朝) 수용은 6.25 전란시에 분실되었다. 총 면적은 5,463평이고, 정전(正殿)은 건평이 174평정도 된다.

  • 이 殿에는 태조 고황제, 세조대왕, 원종대왕, 숙종대왕, 영조대왕, 정조선황제, 순조숙황제, 문조익황제, 헌종성황제, 철종장황제, 고종태황제, 순종효황제의 수용이 봉안되어 있었다.

함흥본궁(咸興本宮)

 

  • 추존되신 왕조 및 그 왕후이셨던 목조(穆祖)대왕, 효공(孝恭)왕후, 익조(翼祖)대왕, 정숙(貞淑)왕후, 도조(度祖)대왕, 경순(敬順)왕후, 환조(桓祖)대왕, 의혜(懿惠)왕후와 태조 고황제,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의 신판을 봉안한 곳이다.
     
  • 태조 고황제께서 등극하신 후 이 궁을 건조하시고 목*익*도*환, 4代祖와 그 왕후를 봉안하셨고 유교(遺敎)에 의하여 태조고황제, 신의고황후 신판을 봉안하였으며, 숙종 22년 (1696년)에 신덕고황후 위판을 추봉(追奉)하였다.
     
  • 이 궁의 소재는 함흥(함경북도 함주군 운남면 궁서리)이고 좌향은 임좌병향(壬坐丙向)이며 그 규모는 정전(正殿) 20간, 이안청(移安廳) 6간, 행각(行閣) 30간반, 풍패루(豊沛樓) 12간, 齊室 30간이다.
     
  • 태조 고황제께서 용잠시(龍潛時)에 귀주동 舊邸에서 이곳에 移御하셨고 이후 상왕으로 북쪽을 순례하실 때에도 이 궁에 계셨었다.

종묘 (宗廟)

 

  • 종묘는 태묘(正殿)와 조묘(조廟 - 永寧殿)의 2개 殿으로 되어 있고 서울시 종로구 묘동에 위치한다.
     
  • 太廟는 우리 역대 제왕의 부조위(不조位) 신주를 봉안한 殿이고, 조廟는 조遷位 신주를 봉안한 전이다.
     
  • 종묘는 태조 3년(1394년) 11월 1일에 基地를 擇定하여 태조 4년(1395년) 2월에 기공하고 같은 해 9월에 완공하여 四祖·同后 신주를 개경으로부터 한양 신조에 移安하였다.
     
  • 영령전은 세종 3년(1421년) 7월에 건조하였는데 兩殿은 건조 200여년 후인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현존하는 종묘는 선조 41년(1608년)에 중건한 것이다.
     
  • 정전 정문의 동서에 공신당(功臣堂), 칠사당(七祀堂)이 있으며 총면적은 56,074평이다.

    종묘의 자세한 내용과 대제절차 보기
    종묘신위봉안실 도표

칠궁 (七宮)

 

  • 칠궁(七宮)은 역대 제왕중의 사친(私親)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 칠궁의 터(현 서울 종로구 궁정동 1번지)는 본래 영조대왕께서 그 사친(숙종대왕의 후궁 숙빈최씨)을 위하여 영조 원년(1725년) 11월에 이 곳에 육상묘(毓祥廟)를 건축하시어 그 옆에 여막(廬幕)을 지으시고 계시던 곳이다.  융희(隆熙) 2년(1908년)에 각처의 사친묘를 이 궁에 이안하게 되었는데 동으로부터 궁의 순서에 따라 열기하면 다음과 같다.
  1. 저경궁(儲慶宮)
     선조대왕 후궁 원종대왕 사친이신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인빈은 광해군 5년(1613년) 10월에 훙서(薨逝)하자 영조 31년에 사자(祠字)를 원종 구저 송현궁(松峴宮-현 한국은행 후편)으로 하여 궁호를 저경궁이라 하였고, 융희 2년에 이안하였다.
     
  2. 대빈궁(大嬪宮)
    숙종대왕 후궁(경종대왕 사친 옥선부대빈 張씨, 통칭 장희빈)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대빈은 숙종 27년(1701년) 10월에 훙서하자 신판을 정동 사저에 봉안하였다가 경종 2년에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하고 교통에 대빈궁을 건립 이안하였다가 고종 7년에 육상궁에 이안하고, 다시 고종 24년에 구기(舊基)로 이안하였다가 융희 2년에 또다시 이안하였다.
     
  3. 육상궁(毓祥宮)
    숙종대왕 후궁(영조대왕 사친 숙빈 최씨)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숙빈은 숙종 44년(1718년) 3월에 훙서하시자 영조 원년 육상묘를 건립하시어 신판을 봉안하고 영조 29년(1753년)에 육상궁이라 개칭하였다.
     
  4. 선희궁(宣禧宮)
    영조대왕 후궁(장조대왕 사친 영빈이씨)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영빈은 영조 40년(1764년) 7월에 훙서하여 묘호를 의열궁(義烈宮)이라 하여 백운동에 건립하였다가 정조 12년(1788년) 선희궁으로 개칭하였고, 융희 2년 경우궁(景祐宮)내에 이안하였다.
     
  5. 연우궁(延祐宮)
    영조대왕 후궁(진종대왕 사친 정빈이씨)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靖嬪께서는 경종 원년 11월에 훙서하였는데 정조대왕께서 즉위하신 후 진종을 추존하시고 진종의 사친이신 정빈을 위하여 정조 2년에 경복궁 추성문밖에 입묘하였다가 융희 2년 육상궁내에 이안하였다.
     
  6. 경우궁(景祐宮)
    정조대왕 후궁(순조대왕 사친 수빈박씨)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綏嬪은 순조22년(1821년) 12월에 훙서하여 순조 24년 계동에 경우궁을 건립하고 신판을 봉안하였다가 융희 2년 이안하였다.
     
  7. 덕안궁(德安宮)
    고종태황제의 후궁(영왕의 사친 순헌귀비 엄씨)의 신판을 봉안한 궁이다. 純獻貴妃는 1911년 7월에 훙서하여 덕수궁안의 영복당을 혼궁(魂宮)으로 삼았다가 이안하였다.

칠  궁  봉  안  도

西





 





 

宣景

禧祐

宮宮

 





 

毓延

祥祐

宮宮